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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수필

[2020 산골수필 4호] 무주의 ‘순간’​_윤재호 영화감독

무주의 순간

 

‘Cat power’의 라이브 콘서트 음악을 들으며 무주로 향한다. 컬컬한 그녀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유월의 바람과 잘 어울린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무주의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은 생소한 곳인 무주. 어릴 때 가족 여행으로 갔던 기억이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게 전부다.

주위가 산으로 뒤덮인 땅에 발을 내딛는 순간,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뭐랄까, 알 수 없는 기운이 있는 곳이랄까? 이상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무주에 머문 후 내 삶의 가장 큰 변화가 온 것은 사실이다. "운명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무주는 나에게 특별한 곳이 되어 버렸다.​

 

​안개가 자욱한 무주의 이른 아침. ‘Mogwai’의 ‘Take Me Somewhere Nice’ (https://www.youtube.com/watch?v=luM6oeCM7Yw)를 들으며, 쌀쌀한 아침 공기를 마셔본다. 저 멀리 산 위에 떠있는 바다처럼 보이는 구름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무주의 남다른 매력이라면 바로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이 아닐까?

난 꿈을 자주 꾸는 편인데, 꿈과 아침은 묘한 연결성이 있다. 색깔이 없는 듯한 인상을 주는 꿈은 이른 아침과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주의 아침은 마치 무채색의 꿈을 꾸다가 짙은 푸른색이 살며시 스며드는 느낌이다. 이 순간만큼은 피부로 느껴야 하고, 눈으로 보아야 하고, 귀로 들어봐야 하며, 코로 숨을 쉬어봐야 한다. 난 이 느낌을 무주산골영화제와 함께 만든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순간>이라는 생소하면서도, 실험적인 단편에서 짧게나마 표현했다. 때론 시나리오에 의존하지 않고, 느끼는 대로 연출을 하는 것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흥미로운 작업이다. 음악 밴드 뮤즈그레인, 배우 김혜나 그리고 무주를 찾은 영화제 관객들과 함께 만든 <순간>은 무주산골영화제가 기획한 재미나고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무주의 산을 걷고 있으니, 잠시 옛 기억이 떠오른다. 19년 전, 프랑스 동부 로렌 지방에 위치한 낭시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을 때의 난 20대를 시작하고 있었다. 수많은 나라들 중 왜 프랑스에 갔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왔지만 그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수많은 우연들 중 하나였고, 그렇게 선택한 곳에서 우연히 영화를 만났다.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던 첫 단편 영화에는 여주인공이 산에 올라가 멀리 보이는 도시를 향해 고함을 지르는 장면이 있다. 그때를 생각하니,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머물러 간다.

  

프랑스에서 시작한 20대의 난 밝은 미래를 꿈꾸며, 새로운 삶에 노력하고 충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론 실수와 실패의 반복이었다. 끊임없는 도전을 했지만 매번 원점으로 돌아올 때마다,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내가 깨우치고 알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20대가 가질 수 있는 불안감과 다급한 마음을 쉽게 떨쳐버릴 수는 없었지만, 이러한 과정들은 내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건 마치 이제 걸으려고 하는 아기가 끊임없이 넘어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주에서 며칠을 보내고, ‘CocoRosie’의 ‘Beautiful boyz’ (https://www.youtube.com/watch?v=kBvTs9UsnM8)를 들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났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어떤 아기가 내 품에 안겨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너무도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꿈이었는데, 그날 아침, 와이프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운명을 잘 믿지 않는 편인 나도 이럴 땐, 나도 모르는 신비함에 푹 빠져 본다. 누군가 나에게 마법을 건 듯, 그렇게 무주는 제법 요상한 능력을 숨기고 있는 작은 행성 같은 곳처럼 보였다. 물론 이 우연의 일치를 믿든 말든 개개인의 자유의지에 맡기며... 

 

 

『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순간>

단편 다큐멘터리 영화 <순간>은 무주산골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무주라는 공간에 모인 관객들이 직접 촬영한 아름답고 의미 있는 '순간'을 모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단편 영화 제작 프로젝트이다.
본 프로젝트를 위해 7회 영화제가 열렸던 5일동안 약 200여 편의 영상이 SNS를 통해 모집되었으며, 총 연출을 맡은 윤재호 감독에 의해 선정된 12편의 관객 영상이 본 영화에 사용되었다. 

영화감독의 영상과 관객의 영상, 전문 연기자의 연기와 6명의 보이스오버 그리고 유니크한 감성의 어쿠스틱 팝 밴드 뮤즈그레인의 음악과 함께 우리들의 일상이 리드미컬하게 연결된 <순간>은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관객들에게 드라마틱한 영화적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오는 6월 4일 목요일,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 온라인 개막식에서 처음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윤재호
<레터스>(2017), <뷰티풀 데이즈>(2017) 등 연출한 영화감독.
무주산골영화제와는 지난 7회에서 <레터스>가 상영되며 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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