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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머의 편지

2020 산골 프로그래머의 두 번째 편지

2020년 산골 프로그래머가 관객 여러분께 보내는 두 번째 편지

 

다 못해도 우리는 안전하게 할 수 있다고, 아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시국에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영화제를 한다는 게 사람들을 위험하게 하는 일일리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안 하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우리의 일상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도 가도 못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영화로, 음악으로, 자연으로 잠시 쉴 수 있는 시공간을 선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극장에서 영화 보는 일이, 야외에서 영화 보고 어울려 음악을 듣는 것이 밥 먹는 식당이나 술 먹는 호프집이나 커피 마시는 카페보다 위험할리 없지 않냐고 묻고 싶었다. 힘든 시간일수록 영화를 보고 즐기고 쉬는 일도 먹고사는 일만큼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올해에는 유난히 영화제에 담고 싶었던 마음들이 많았다.  


하지만. 거의 할 수 있을 뻔했지만. 

결국 이태원 클럽발 고비를 넘지 못했다. 5월 20일 오후, 정상 개최를 기대하며 마지막까지 미뤄두었던 최종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원래부터 안되었던 일을,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되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나 생각했다. 사무실로 돌아와 정신없이 한바탕 전화를 돌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뎅그러니 사무실에 혼자 있었다. 모두가 퇴근한 빈 사무실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속이 쓰렸다. 머릿속에 같은 그림을 넣고 하하 호호 서로를 다독이며 올해 영화제를 준비했던 동료들의 얼굴과 1년 내내 영화제를 기다리고 있었을 관객 여러분의 마음이 떠올랐다. 코로나19로 세상이 떠들썩했을 때에도 올해 영화제를 예년과 같은 모습으로 하지 못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으니까. 상황이 심각해질 때마다 멈칫거리기는 했지만 멈추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나와 동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최선으로 관객 여러분과 만나고 싶었다. 결국 무주에서 여러분을 직접 만날 수는 없게 되었지만, 이미 공개된 올해의 프로그램은 올해 무주산골영화제가, 그리고 나와 동료들이 전력을 다해 관객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최선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다. 적지 않은 예산으로 준비한 것들을 무주에서 예정된 기간에 보여줄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모두가 아는 것처럼, 동료들과 함께 고심 끝에 찾아낸 무주산골영화제의 답은 “온/오프라인 분산 개최”다. 본 영화제 기간에는 현장성을 살릴 수 있는 영화/토크/공연 프로그램을 모아 온라인 라이브 생방송을 '관객 없이 비공개로' 영화제를 진행하고, 나머지 모든 상영작은 프로그램 별로 묶어 영화제 이후 코로나19 사태의 추이에 따라 무주 및 전국에서 오프라인 특별전과 기획전으로 형태로 영화제를 진행하려고 한다. 어렵게 찾아낸 이 답 속에는 ‘영화제’란 ‘영화’를 보는 ‘관객’과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근간으로 하는 축제이고, ‘관객’과 ‘극장’과 ‘영화’, 그리고 그 영화를 만든 ‘창작자’들이 만나 만들어내는 그 마법 같은 순간과 펄떡거리는 에너지가 ‘영화제’를 추동하는 힘이라는 우리의 믿음이 담겨 있다. 또한 1년 내내 무주산골영화제를 기다려준 여러분들을 위한 나와 동료들의 고마움과 애정도 함께 담겨 있다.  

코로나19는 영화와 극장, 극장과 관객 사이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영화제들의 뒷덜미를 잡아 주저앉힌 다음, 영화제들의 멱살을 하나씩 틀어쥐고 너는 도대체 누구냐고, 너는 정체가 뭐였냐고, 너에게 영화는, 관객은 도대체 어떤 의미냐고, 이래도 계속해보겠냐고, 이런 상황에서 넌 뭘 지키고 뭘 포기할 거냐고 거칠게 묻고 있다. 지난 25년 동안 극장과 관객들을 기반으로 거침없이 성장해온 한국의 영화제들은 갑자기 손발이 묶인 채 난감하고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코로나 시대가 던지는 거친 질문에 답을 내놓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영화제들마다 내놓고 있는 답들이 그렇게 다양하거나 특별하진 않다. 하지만 영화제들이 찾아낸 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각 영화제들이 처한 물리적 상황에서부터 영화와 관객에 대한 철학, 그리고 각자의 정체성과 영화제 방향에 대한 생각, 더 나아가 각 영화제들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까지 꽤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무주산골영화제가 찾아낸 답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코로나19는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를 통째로 도둑질해가려고 했지만 우린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든 우리의 방식으로 지키는 쪽을 선택했다. 물론 비교적 잘 해오던 영화제가 위기에 처하자 서슴없이 영화제를 낭비라고 말하는 몇몇 사람들의 무례한 언어 속에서 때론 절망하기도 했지만 나와 동료들은 여러분들에게 올해 준비한 것들을 최선을 다해 차례차례 선보일 생각이다. 아마도 5일이면 끝날 행사를 몇 개월에 나누어 하려면 더 고생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관객 여러분을 믿고 이 긴 여정을 시작하려고 한다. 가끔 “온/오프라인 분산 개최” 공지 밑에 달린  수많은 댓글을 꺼내 읽는다. 그리고 영화제에 대한 애정, 무주에 갈 수 없는 아쉬움, 정말 가고 싶었던 곳에 갑자기 가지 못하게 된 상실감. 분산 개최 결정에 대한 이해 등 다양한 감정이 담긴 여러분들의 댓글을 꼭꼭 씹어 먹는다. 아마도 관객 여러분의 이런 애정과 관심이 지속되는 한 무주산골영화제는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다.  

4월 중순, 지난 7년간 매년 그랬듯, 올해 영화제를 여는 글을 썼다. 코로나19로 인한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고, 글의 톤과 내용은 확진자 수에 따라 매일매일 조금씩 달라졌다. 마지막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며 수정을 거듭하며 역대급으로 힘들게 완성했던 글이었다. (http://bitly.kr/sUp7Fa3jJU​) 그로부터 한 달 반이 지났다. 그 사이 영화제의 개최 방식이 바뀌었지만 코로나19의 상황은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롤러코스터처럼 호전됐다 악화됐다를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에 담은 나와 동료들의 마음은 여전히 그대로다.    

 

이제 무주산골영화제는 6월 4일 오후 7시 무관객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 개막식으로 여덟 번째 영화 소풍의 첫 발을 뗀다. 그리고 4일간 일부 프로그램을 재구성한 영화/토크/공연 프로그램이 무관객 온라인 라이브 방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간다. 1년 만의 첫 만남이 비록 온라인이라 많이 아쉽지만 그래도 많은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린다.  

마지막으로, 개최 방식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응원하고 지지해 준 상영작 감독, 배우들을 비롯한 모든 창작자들과 제작/배급사 관계자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무관객 온라인 라이브 방송 시간표 -> http://bitly.kr/mow2739xlT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 무관객 온라인 라이브 방송🌳

📌공식 네이버TV tv.naver.com/mj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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